우성's

[ESSAY] 권투? 너 사람 때릴 수 있어?

이리 치이고 저리 망가졌어도 몸만은 괜찮을 거라고 믿었지만, 그 자신감엔 근거가 없었다. 달리기, 산책, 수영과 권투를 거쳐 마침내 요가를 찾은 이야기.

우성 2018년 05월 03일

몸이 미묘하고 이상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러다 재가 되겠구나 싶은 순간이 점점 잦아졌다. 불편함이 삶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앉아있으니 오후 몇 시가 되면 허리가 당겼다. 어떤 날은 침대에 누워서 동이 트는 걸 하릴없이 지켜 봤다. 그게 다 피로로 수렴하면서 일상이 허무해지기 시작했다. 의욕이 희미해졌다.

규칙적으로 한강 둔치를 뛸 수 있는 형편이 됐을 땐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뛰다 보면 어느새 체중이 줄어있었다. 못 입게 됐거나 답답하게 조이던 옷도 하나하나 낙낙하게 맞기 시작했다. 그래서였다. 다시 동네를 좀 뛰어보려고 했다. 위로 가면 남산, 아래로 가면 한강인 동네였다. 남산쪽은 잔잔하고 의뭉스러운 오르막이었다. 한강으로 가려니 이쪽 둔치는 묘하게 어두운 느낌이 있었다. 오르막을 뛰는 김에 산길을 오르기도 했다. 어두운 느낌 같은 건 무시하고 반포대교가지 뛰어보기도 했다. 핑계 같지만, 둘 다 여의치 않았다.

운동을 하게 만드는 힘은 두 가지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일단 강제성이 필요했다. 혹은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서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이 경우의 달리기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러닝 코스는 애매했다. 땀을 흘리고 돌아와도 개운치 않았다. 결정적으로 무릎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뛰었는데 예전 같지 않았다. 나이 탓이 아니었다. 내가 내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방만해진 탓이었다.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 몸을 왜 이렇게까지 내버려뒀을까? 다른 대단한 무엇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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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뛰기보다 걷는 게 낫다는 친구의 조언을 따라보기도 했다. 아침마다 산책처럼 산길을 걸었다. 오래 걷지도 않았는데 몸이 더워졌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는 장면이 사진처럼 눈에 들어왔다. 달릴 땐 못 보던 장면이었다. 야트막한 산 위에 올라가면 서울이 달라 보였다. 몇 년 간 잊고 있었던 아침이 거기 있었다. 1시간 정도 걸었나 싶었는데 돌아오면 25분 정도 지나있었다. 내가 가장 맑은 시간, 쾌적한 효율이었다.

아침이 버거울 땐 저녁에 걸었다. 친구와 한 잔하고 돌아온 밤에도, 그 즈음에 듣던 노래를 들으면서 기꺼이 산쪽으로 걸었다. 걷다 보니 여유도 생겼다. 동네 놀이터에 앉아서 한 숨 돌리는 시간도 그렇게 좋았다. 40분 남짓 되는 협주곡을 들으면서 시간을 가늠하는 일도 근사했다. 1악장을 들으면서 오르막을 걷다가 2악장에선 쉬었다. 그러다 3악장에선 집으로 걷기 시작하는 식이었다.

몸이 풀리니 마음도 명료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기 싫던 원고가 산책 후에 풀리는 경험은 무슨 마법 같았다. 커피나 차, 5년 전에 끊었던 담배보다 좋은 효용이었다. 음악의 장르를 바꾸고 딴짓을 하는 식으로 흘려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집중하려고 두 시간 딴짓 하다가 그냥 잠들어버리는 밤을 탓하느니, 30분정도 걷고 돌아오는 편이 깔끔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하지만 운동도 연애 같아서, 이대로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산책과도 소원해지는 시기가 왔다. ‘걸어 봐야 그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새 운동화나 음악도 소용없었다. 같이 걸을 수 있는 누군가 있었다면 나았을까? 권태는 갑자기 왔다. 걷기에 질렸는데 뛸 리는 만무했다. 소월길을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로 기분은 바꿀 수 있었지만… 지금 챙기고 싶은 건 기분이 아니었다.

새로 배우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을 먼저 찾았다. 집이나 회사 근처에 있는 수영장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의치 않았다. 그 많던 ‘동네 수영장’들은 다 어디 갔지? 테니스를 다시 배울까? 검도나 유도를 다시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몸을 써야 했다. 근육을 키우거나 노화에 저항한다는 식으로 거창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다. 그저, 몸이 몸으로서 부드럽게 기능하길 원했다. 말을 하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만 쓰려고 태어난 몸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 조바심이 생겼다. 늦어지는 술자리, 더부룩하게 일어나는 아침마다 죄를 짓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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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왜 권투가 떠올랐을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찾아보던 격투가들의 영상 때문에? 마침 회사 근처에 있는 체육관을 발견해서? 맨몸 운동의 매력은 분명했다. 빠른 시간에 어마어마한 열량을 소비할 수 있다는 점, 줄넘기만 몇 세트 해도 땀이 ‘쪽’ 빠진다는 점도 좋았다. 뭣보다 서생 같은 손으로도 내 몸은 지킬 수 있겠다는 느낌, 더 열심히 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줄 수 있을 거라는 멀고 먼 목표의식도 있었다. 꾸준히 격투기를 배운다는 것, 권투를 수련의 방식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권투? 너 사람 때릴 수 있어?”

권투를 단념하게 된 건 친구 이크종의 질문 때문이었다.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물론, 권투를 배운다고 바로 링에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오로지 링에 오르는 순간만을 위해 부단히 수련해야 한다는 사실도. 하지만 형식과 목적이 안에서 부대끼기 시작했다. 다시 묻기 시작했다. ‘권투가 나와 맞는 운동일까?’ 운동과 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한테 필요했던 수련은 안으로 수렴하는 에너지였다. 마음을 다듬어야 몸이 나아지는 법이었다. 모든 격투는 몸과 마음을 두루 수련하는 거라지만, 당시의 나한테 권투는 본격적인 ‘발산형’ 운동이었다. 검도나 유도를 배울 때를 돌이켜봐도 그랬다. 유도보다는 검도가 좋았다. 마음과 몸 사이의 균형에서, 나는 좀 더 마음 쪽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 같았다. 빠르게 피하고 때리기 보다 가만히 지켜보면서 알아채는 쪽이었다. 몇 개의 운동을 수련하는 동안 나한테 맞는 운동의 성격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럼 저랑 요가원 한 번 가보실래요? 선배랑 잘 맞을 것 같아, 왠지.”

요가를 시작하게 것도 이 한 마디의 권유 덕이었다. 그때 한창 요가 수련 중이었던 옆자리 후배가 수영, 권투, 검도 같은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한테 건넨 한 마디였다.

“회사에서 가깝고, 요가 좋아요. 몸도 좋아질 거고. 우리 요가원에는 거울도 없어요.”
“남자도 있어? 나 가도 괜찮아? 민망하지 않을까?”
“일단 해봐요.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을걸?”
“근데 나 그 옷은 정말 못 입을 것 같아. 몸에 붙는 옷 있잖아. 수련할 땐 그렇게 입어야 해? 나 유치원 다닐 때 그 흰색 타이즈 있지? 그것도 너무 싫어서 긴바지만 입었다?”
“그런 옷 안 입어도 돼! 입지 마요, 제발.”

1주일 후였다. 후배와 요가원에 갔다.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길이의 운동복과 면 티셔츠 차림이었다. 매트는 요가원에서 빌릴 수 있었다. 저녁 7시, 한 시간짜리 수련이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우려와 걱정 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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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몸 다 굳어있을 텐데, 괜찮을까? 남자가 나 뿐이면 좀 어색할 것 같은데! 역시 옷인가! 다른 옷을 입고 왔어야 했나?!’

복잡하고 긴장되고 심난한 가운데, 나는 어쨌든 요가 매트와 수건을 들고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후배는 저 쪽에, 나는 좀 떨어진 곳에 매트를 깔고 앉았다. 꽤 많이 떨렸는데, 동시에 차분하게 가라앉기도 하는 와중에 수업이 시작됐다.

“마시고 내쉬는 숨, 자신의 호흡에 의식을 집중합니다.”

시작은 호흡이었다. 편하게 앉아서 손을 무릎 위에 놓고, 입은 닫고 코로 쉬는 숨이었다. 이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볍게 몸을 풀어준 후에는 조금 더 본격적인 자세를 연이어 취했다. 여러 자세가 이어진 세트를 반복하거나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지도는 구체적이었다. 발가락과 손가락 끝의 힘, 쇄골, 갈비뼈, 어떤 근육, 골반의 방향과 허벅지가 회전하는 방향까지 내가 통제해야 했다. 인식도 못하고 있었던 몸의 구석구석을 부드럽게 깨우는 목소리였다.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서두르실 필요도 없어요. 그저 오늘의 몸이 허락하는 곳에서 머무르세요. 천천히 호흡 이어가면서 자신을 바라봅니다.”

15분 정도가 차분히 흘렀을까? 이후의 시간 감각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동작이 깊어지기 시작하면서 내 몸과 뇌는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머리 속은 이미 도화지 같았다. 통제는 전혀 못하고 있었다. 팔, 다리, 옆구리, 허리, 엉덩이가 한꺼번에 웅성거렸다. 허리가 통째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경추, 흉추, 요추, 꼬리뼈가 다 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왜 갑자기 이래? 왜 갑자기 움직여? 아플텐데? 어라? 계속 하네?”

뼈와 근육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니까 마음도 막 급해졌다. ‘와, 이거 정말 힘든데?’ 생각할 때 매트 위로 큰 땀방울 하나가 뚝 떨어졌다. 얼굴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오, 몸이 이렇게는 절대 안 움직이는데?’ 생각할 때 또 땀이 뚝 떨어졌다. 이번에는 팔에서, 다음에는 종아리에서 땀이 떨어졌다. 평이한 자세 같은데 그게 안 됐다. 몸이 마음 같지 않으니까 안절부절 못했다. 그제서야 운동복과 티셔츠에 눈이 갔다. 둘 다 흠뻑 젖어있었다. 같이 갔던 후배를 찾을 틈도, 옆에 누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채 한 시간이 다 지나갔다. 요가가 이런 거였나?

“어떠셨어요?”
“이상했어요. 신기했어요. 그런데 재밌었어요. 좋았어요! 제 몸이 이렇게. 저… 3개월 먼저 시작해볼게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몸의 감각과 마음의 흐름이었다. 밤엔 잠드는 줄도 모르게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엔 온 몸의 근육이 놀라있었다. 거기 있었는 줄도 몰랐던 근육까지 나한테 말을 걸고 있었다. ‘거봐, 왜 이제서야 시작했어?’ 웃으면서 묻는 것 같았다. 걷고 굽히고 펼 때마다 뻐근하니 아팠는데, 그 마음이 뿌듯하고 좋았다.

나는 나의 수련을 시작한 셈이었다. 내 속도를 찾으려는 참이었다. 3개월이 지난 후에는 6개월을, 그 시간도 지난 후엔 1년을 등록했다. 그렇게 지도자 과정까지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날 저녁, 매트와 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