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볼보 XC60을 고르는 마음

가족을 생각하면 SUV를 사야한다는 게 무슨 공식 같았다. 흠뻑 수긍하면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게 많이 있었다.

우성 2018년 04월 01일

필요와 불필요를 구분하려면 냉정해져야 한다. 자동차를 살 때는 더 신중해진다. 계산기를 몇 번이나 두드려가며 수치 하나에까지 민감해진다. 최대토크, 최고출력, 공인연비 같은 단어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장르에 대한 고민은 끝까지 몇 번이고 거듭해 이어진다. ‘해치백은 싫으니까 접어두자. 그런데 세단은 지루해, 아버지 같아. 그렇다면?’ SUV가 그 모든 질문과 고민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그야말로 대중적이면서도 믿음직한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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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은 SUV의 시대였다. 무서운 확장세였다. 거의 모든 브랜드가 SUV 라인업을 강화했다. 포르쉐가 카이엔을 만들어 성공했다는 건 이제 고전 같은 얘기가 됐다. 람보르기니는 우르스를, 벤틀리는 벤테이가를 만들었다. 비현실적인 성능과 아름다움, 지구를 압도할 것 같은 성능까지 모조리 갖춘 차들. 전 세계의 부와 명예가 모조리 선망하는 모델들. 거의 모든 브랜드가 거의 모든 장르의 SUV를 내놓고 있다. 지붕 라인을 날렵하게 깎아서 쿠페의 선을 닮은 SUV를, 낭만적인 천지붕을 얹어 레인지로버 이보크처럼 예쁜 SUV까지.

시장이 이렇게 바쁘게 움직일 때, 볼보는 묵직하게 버티면서 날렵한 변화를 설계해 왔다. 곧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V라인과 크로스컨트리 라인을 내놓을 때마다 긍정적인 단서를 엿볼 수 있었다. XC90이 나왔을 땐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2016년 봄이었다. 평가가 가능한 거의 모든 면에서 칼 같이 날렵했다. 벼리고 또 벼린 감각이었다. XC90은 볼보 SUV의 기함이다. 이후 모든 SUV의 기준이 되는 차였다. 2018년 3월에는 XC90 T6 5인승 모델을 추가 출시했고, 더파크가 볼보 XC60 D4 인스크립션을 시승했던 건 봄의 문턱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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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정이었다. 트렁크와 뒷좌석에는 촬영 장비를 잔뜩 싣고 정오가 되기 전에 서울에서 길을 나섰다. 해가 있을 때 바닷가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날만 10시간 정도 운전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가는 길, 속초 시내를 돌아다녔던 시간, 서울에 와서도 차 안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다. 자동차와 일상을 공유하게 되면 인테리어 디자인과 감성 품질을 엄격하게 따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주말 여행이나 가족 여행, 운도 기약도 없이 막히는 어떤 날은 하루의 대부분을 차 안에서 보내게 될 테니까.

볼보 XC60의 실내는 조용했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일단 들리는 소음이 적었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건 두 번째 의미다. XC60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침착하게 고급스럽다. 내가 이렇게 예쁘고 여기는 이렇게 많이 신경 썼다고 자랑하는 차도 아니다. 시끄럽게 웅변하지 않는다. 뭘 강요하려는 마음도 없다. 취향과 장르에 따라 그런 감성이 필요한 차도 있지만 일상을 오래 나눌 차라면 역시 그러지 않는 편에 고요한 품위가 있다. 무턱대고 속 시끄러운 디자인 언어가 시야와 마음을 얼마나 어지럽히는지도,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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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은 적당한 두께와 부피로 진득하니 부드럽게 몸을 받쳐준다. 원목 패널의 정체성도 신중하기 이를 데 없다. 크롬은 꼭 필요한 곳에 날렵하게 썼다. 버튼의 숫자는 최대한 줄였다. 그 와중에 큼직큼직해서 효율적이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크기도 반응성도 시원시원하다. 피부가 닿아야만 반응하는 식으로 새침한 성격도 아니다. 장갑 낀 손에도 기민하게 반응한다. 실내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기능을 이 패널에서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이 모든 요소가 조화롭고 겸손하게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 운전석에 앉아서도 딱 내 방에서 쉬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운전해도 뻐근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오디오 시스템은 XC60의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극상의 쾌락을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이다. 요즘 볼보는 바우어 앤 윌킨스 오디오 시스템을 쓴다. 오디오 브랜드와 자동차 회사의 협업은 시대와 장르와 모델에 따라 종횡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영원한 궁합이 아니니까 더 애틋하게, XC60과 바우어 앤 윌킨스의 이 선물 같은 조합을 반드시 경험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귀가 뻥 뚫리는 것 같은 출력, 피부가 다 부드러워지는 것 같은 음색, 기술로 성취해 낸 세팅이 다채롭고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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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페시아 패널에서 세 가지 세팅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각각 스튜디오, 개별무대, 콘서트홀로 분류돼 있다. 콘서트홀 세팅에선 그야말로 걸출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1927년, 볼보가 탄생한 도시 스웨덴 예테보리에 있는 콘서트홀의 음향을 그대로 재현했다. 시승하는 내내 무수한 협주곡과 독주곡, 교향곡과 성악곡을 들으면서 황홀했다. KBS 클래식 FM을 들을 때도 콘서트홀 세팅이라면 시원했다. 스트레스로 잔뜩 긴장한 것 같았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는 것 같았다. 세 가지 세팅의 느낌이 극적으로 달랐다. 장르와 취향에 따라 폭넓은 조합도 가능했다. 록이나 가요,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주는 감각도 마냥 탁월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쉼 없이 달렸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막혔는데, 몸이 느끼는 피로조차 미미한 수준이었다. 볼보 XC60 D4 인스크립션은 1,969cc 직렬 4기통 트윈터보 디젤 엔진을 쓴다. 최고출력은 190마력, 최대토크는 40.8kg.m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8.4초. 최고속도는 시속 205킬로미터다. 복합공인연비는 리터당 13.3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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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에 비해 소박한 출력 혹은 토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풍요로운 일상에도 가벼운 일탈에도 넉넉한 성능이다. 혼자라도, 둘이어도, 가족이나 어른과 함께일 때도 마음 불편할 일 없다. 넉넉한 마음과 품위가 있다. 게다가 밖에서 보는 XC60의 디자인이야말로 동시대적으로 세련됐다. ‘안전의 대명사’라는 그들의 정체성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이정도까지 성취해냈다.

6천만원에서 8천만원 사이의 SUV를 사려고 고민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반드시 사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한 번 경험해 보세요’라고 쓴 쪽지를 조용히 건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수치로 예측할 수 있는, 수치가 담보할 수 있는 성능의 벽은 이미 허물어진 지 오래 됐으니까. 모두의 몸과 마음과 감각은 제각각 다른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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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왔을 땐 자정 즈음이었다. 하루 종일 이 안에서 보낸 길고 긴 시간은 그저 머무는 듯 했다. 차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는 몇 걸음, 문득 뒤돌아 보는 모습은 이렇게 듬직했다. 모든 게 위안이었다. 매일 이럴 수 있다면, 이토록 침착한 평화를 오래도록 소유할 수 있다면.

글/ 정우성
사진/ 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