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s

중요한 건 낭만이 아니야

돈을 벌 듯, 그 돈으로 성을 짓 듯, 밤마다 파티를 하듯, 사랑은 그렇게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더파크 2019년 11월 15일

친구는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랑에 빠진 것 같기도 했고, 벗어날 수 없는 불안 가운데 갇혀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몇 주 전에 이별을 경험한 친구였다. 몇 잔의 술을 나눠 마시고, 아주 잠깐 울고, 이렇게 지질하게 구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멋쩍어 하면서 서로의 택시를 잡아준 밤이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연애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엔 본분을 잊고 유령처럼 배회하는 관계도 있었다. 몇 주 후, 친구가 살짝 홀린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메시지를 보내면 읽긴 해. 오래 걸리지만 답 문자가 오기도 해.”
“보고 싶다고 하고 그런 거 아니지?”
“에이, 아니야.”

체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살짝 충혈된 눈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한테는 제때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게 바로 미련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미련이란 건 이뤄질 수 없는 마음을 괜히 간직한 채, 그것도 낭만이라고 무책임하게 믿으면서, 언젠가는 이뤄질 거라고 막연하게 추구하는 감정이라는 말도 아직은 할 수 없었다.

사랑이 언제부터 판타지였지? 무슨 수를 써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건 다른 모든 일과 같았다. 감정은 기술로 어쩔 수 있는게 아니니까. 차분한 마음으로 연필을 깎는 일에 익숙해지거나, 요가 자세를 수련하는 것처럼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어떤 나무는 열 번을 찍어도 넘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찍어선 안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가만히 있는 나무와 그걸 베고 싶은 누군가가 하는 게 사랑일 리 없기 때문이었다. 끝난 관계는 재가 된 나무 같았다. 죽은 생명을 되살리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당연한 걸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예의였는지도 몰랐다. 친구는 마침내 한 번 정도는 다시 만나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image

“내일 한 잔 하기로 했어.”
“헤어진 걔랑?”
“그냥, 한 번만. 너무 갑자기 헤어졌으니까.”
“헤어진 사람이랑 술을 왜 마셔? 술 마시면 시간이 돌아와? 같이 한 번 더 울면 사랑이 다시 생겨? 끝난 사랑도 사랑이야? 네가 지금 사랑하는게 그 사람이야, 아님 그런 감정에 취해있는 너야?”

친구에겐 이 모든 물음표 중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친구가 다시 한 번 슬퍼할 게 분명해서 내 속이 상했지만, 그 관계는 오로지 친구와 전 연인의 몫이었다. 대신 이 정도로만 말했다.

“그래, 애쓰지 말고.”

개츠비의 그 성대했던 파티는 모조리 데이지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였다. 그에겐 데이지가 마지막 성취였다. 스스로 만들어낸 온갖 판타지와 오해와 소문 속에서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바였다.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이웃, 닉 캐러웨이에게 개츠비는 이렇게 말했다.

image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아뇨, 반복할 수 있고말고요! 난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닉 캐러웨이는 이렇게 이어 썼다.

“그는 그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지만, 만약 다시 한 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모든 것을 다시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여름이 깊어지는 동안 파티도 무르익었다. 데이지의 마음을 과거로 돌릴 수 있을 거라는 개츠비의 의지는 꺾인 적이 없었다. 데이지는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본 적이 없다며 우는 여자였다. 그렇게 얽히고 설키는 관계. 파국은 느닷없이 왔다. 데이지는 머틀을 차로 치여 죽였고, 개츠비는 머틀의 남편 조지가 쏜 총에 죽었다. 조지는 자살했다. 여름의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은 날 오후, 파티가 이어지던 계절 내내 단 한 번도 들어간 적 없는 수영장에 처음 들어간 날이었다. 개츠비에겐 마지막 여유였다. 장례식엔 두 사람뿐이었다. 그게 개츠비의 마지막 트로피였다.

image

화려하게 갖춰 입고 진창에서 구르는 것 같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소설 밖에서, 혹시 그는 이런 역설로 전설이 됐을까? 누군가에게 개츠비는 사랑을 죽음과 바꾼 낭만주의자의 아이콘이 되었다. 혹은 거대한 자수성가와 자기개발의 상징이기도 했다. 제목의 역설, 소설의 배경과 관계없이 여기저기서 아무렇게나 호명하고 소비하는 쉬운 이름이기도 했다. 세상엔 돈으로 가질 수 없는 게 있고, 노력과 의지로는 돌릴 수 없는 마음도 있다는 건 자본주의가 감춰놓은 비밀 같았다. 이른 새벽, 친구는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 끝났다, 이제.”

성취에 성취를 이어온 사람은 정작 단념을 몰랐다. 열심히 해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차라리 쉬웠다. 사랑은 그런게 아니었다. 마음이 따르는 규칙은 다른 세상에 있었다. 차라리 아무 규칙도 따르지 않는 게 마음의 본심이었다. 그래서였다. 그날 밤, 친구의 단념이야말로 성공 같았다. 우린 살아있으니까, 아마 사랑도 영영 끝나는 건 아닐 거라고 답 메시지를 보내려다 말았다. 대신 우린 같이 살아있으니까, 네가 외롭고 괴로울 땐 내가 옆에 있을 거라고 조용히 약속하는 밤이었다.

글, 사진/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