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s

[LITTOR] #2. 너는 발리에 다녀와, 나는 도쿄로 갈게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각각 다른 도시로, 아주 다른 생각으로.

우성 2019년 05월 20일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온몸의 근육이 이완하는 것 같았다. 마음에도 온기가 돌았다. 나른하고 친절한 남국의 대기. 한국의 겨울에는 느낄 수 없는 온도와 습도가 내 피부를 은은하게, 또 본격적으로 감싸고 있었다. 발리 응우라라이 공항의 자정 즈음이었다.

4박 5일의 짧은 일정으로 떠나온 여행의 목표는 분명했다. 공항 옆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우붓으로 들어가 요가를 수련하는 거였다. 그게 계획의 전부였다. 사이사이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고, 충분히 걷고 많이 웃으면서 한껏 쉬는 여행. 아, 몽키 포레스트에서 원숭이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조금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의 엔진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터질 것 같던 때도 있었다. 여행이나 출장이라도 관계없었다. 하늘로 떠오른다는 물리적 경험, 한국을 떠난다는 지리적 변화, 당분간은 비행기에 혼자 고립될 수 있다는 심리적 위안 만으로도 두근거렸다. 기자로 일하는 동안은 그렇게 수많은 나라에 다녀왔다. 많을 땐 1년에 8~9회의 출장. 평균 한 달 반에 한 번씩 출국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대부분 자동차 취재를 위한 출장이었다. 젊음을 담보로 건강을 내주고 견문과 경험을 쌓았던 시기였다. 그렇게 남아프리카 공화국, 테네리페 섬, 레바논 베이루트, 핀란드와 노르웨이, 푸에르토리코와 온갖 유럽 도시들을 종횡무진했다. 언젠가부터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내 여권을 받아 드는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세계 각국의 도장이 빽빽하게 찍혀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매체에 소속된 기자가 아니고, 이젠 그때처럼 비행기를 자주 타지 않는다. 회사를 차린 후의 일상은 이전과 아주 달랐다. 효율이 높아졌고 불안의 비중이 커졌다. 조바심이 없다고 불안요소를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다만 침착하게 불안을 응시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만큼 심플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생존이 곧 성공인 업계에 있으니까 그저 살아남으면 된다. 죽으면 안 된다. 단순 명료하다. 여전히 강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지만, 회사에 소속돼 있을 때의 절반 수준이라고 믿는다.

동선도 심플해졌다. 기자였을 때처럼 서울을 종횡으로 누빌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집과 사무실, 요가원 사이를 오가는 게 이동의 전부인 날이 대부분이다. 집과 사무실은 도보로 5분 거리, 요가원까지는 베스파로 10분 거리다. 걷거나 베스파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서 하루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 외의 일정은 잡을 시간이 없다. 결과적으로 자동차를 탈 일도 별로 없는 일상이 되었다. 내 삶의 동선이 이렇게까지 심플했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봄부터 달려 10개월, 어찌어찌 사계절을 겪어냈다. 모든 진행이 예상보다 빨랐다.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알려졌다. 수익도 생각보다 빨리 났다. 생각보다 많이 싸웠고 생각보다 빨리 과로에 시달렸다. 당연히, 생각보다 빨리 지치기도 했다. 모든 상황에서 분명히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는데, 겉으로는 철저히 각자의 시간 속에 있었다. 그 안에서 서로가 얼마나 허덕이고 있었는지는 짐작만 할 수 있었다. 그게 우리의 작업 특성이었다. 그날도 서로의 모니터에 얼굴을 묻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크종의 오른손이 태블릿 모니터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손은 키보드 위에서 분주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 물었다.

“나, 혹시 12월 중순에 발리에 다녀와도 될까? 한 4박 5일 정도? 요가하러 다녀오고 싶은데 괜찮을까?”

오래 생각하고 물었던 질문이었다. 조심스러운 제안이기도 했다. 이 또한 회사를 차린 후에 달라진 개념 중 하나였다. 회사를 다닐 땐 휴가를 내면 그만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마감에 지장만 없으면 며칠을 비워도 무리 없었다. 누가 빠져도 태연히 굴러가는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것. 그게 기업의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달랐다. 2인 3각 가내수공업이었다. 한 명이 삐끗하면 전체가 무너졌다. 해야 하는 일은 늘 넘쳐 있었다. 여행은 곧 공백이었다. 쉰 만큼 매워 넣어야 하는 구덩이였다. 우리의 시간은 어쨌든 공동의 것이 되어 있었다. 이크종이 대답했다.

“오, 그래? 괜찮지 않을까? 그럼 너는 발리에 가, 나는 도쿄에 다녀올게. 가서 우리 여행 콘텐츠에 대한 그림도 좀 그려보고 그러자.”

“아 정말? 괜찮겠어? 마감도 괜찮을까?”

“마감은 다녀와서 하면 되지.”

어떤 배포, 이런 스케일이랄까. 친구의 내면을 아주 폭넓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 한 개인의 스펙트럼을 다채롭게 살필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같이 사업을 하면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조심스럽게 주저주저하는 어떤 결정에 대해 이크종은 이만큼 시원한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있다. 이크종이 조심스러운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크게 결심하기도 한다. 그 균형 사이에 우리가 운영하는 회사의 묘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몰랐던 점을 발견하면서, 놀라고 이해하고 때론 실망하고 또 감탄하면서 우리의 시간이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여행 전 날까지 몇 주의 시간이 다시 흘렀다. 우리는 마감과 마감 사이에서 가까스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행 하루 전, 일을 마치고 먼저 퇴근한 이크종한테는 이런 메시지가 도착했다.

“마트에 가서 팩소주 좀 사가야지. 가서 다자이 오사무 무덤에 올리고 올까 봐.”

이크종의 도쿄 여행 테마는 다자이 오사무였다. 우리가 같이 읽은 <인간실격>과 <사양>의 작가, 이크종이 개인적으로도 좋아해 마지않는 작가의 흔적을 되짚는 여행이기도 했다. 이크종에게 도쿄는 이미 열 번 이상 방문했던 도시였다. 첫 방문부터 너무 좋아서, 이후로도 갈 때마다 더욱 좋아서 외유와 충전이 필요할 때마다 찾는 도시이기도 했다. 태어난 도시와 좋아하는 도시, 살아야 하는 도시와 잘 맞는 도시는 완전히 다른 거니까. 어디 어디를 다 둘러보고 뭘 사야 한다는 조바심 같은 건 이제 없었다. 그저 한숨 돌리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전시와 가고 싶은 바, 아껴뒀던 카페를 향해 오래 걷는 여행이었다. 그날 밤엔 짐을 싸면서 이런 문자를 주고받았다.

“짐 다 쌌어? 아침 비행기랬지? 나는 저녁 비행기야. 푹 자고 ‘앗쌀하게’ 다녀오자.”

“응응. 잠시 독 좀 빼고 오자.”

이후의 시간은 과연 각자의 것. 여행 중의 우리에게 한국은 없었다. 완전히 떨어져서, 우리가 만들어낸 시간을 만끽하면서, 과연 각자의 목적에 맞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발리에선 모든 시간이 좋았다. 버리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 숙소는 요가반(YOGA BARN)이었다. 전 세계에서 요가 수련과 충전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좁은 골목을 관통해 들어가면 그 안에 넓고 넓은 숲이 있었다. 숲 사이사이에 요가 스튜디오와 식당, 다양한 형식의 숙소가 숨은 듯 놓여있었다. 침대에 누우면 거대한 통창 밖으로 남국의 나무들이 살랑거리는 리듬을 볼 수 있었다.

나한테는 낙원 같은 풍경이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마음 놓고 볼 수만 있다면 세계 어디라도 마냥 좋았다. 다른 욕심은 다 내려놓았다. 그게 나의 여행이었다. 그러다 수련 시간에 맞춰 요가 매트를 들고나갔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수련했다. 수련하고 숙소로 돌아와 다시 나무를 만났다. 키가 아주 크고 잎사귀가 넓은 나무, 거대한 야자수와 두꺼운 기둥을 보면서 책을 읽었다. 그러다 낮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땐 여전히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숲 뒤로 해가 지고 있었다. 어떤 밤엔 빗소리를, 다른 밤엔 고요한 숨소리를 들었다. 완벽한 휴식이었다.

숙소 밖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요가를 수련한다는, 엄격하지만 평화로운 공감대가 그 넓고 푸른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요가복을 입고, 매트와 책을 들고, 곳곳에 있는 암자나 의자 혹은 바닥에 앉아서 각각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책을 읽었다. 아기와 놀아주거나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혼자만의 수련에 집중하는 사람도, 랩탑을 펼쳐 놓은 표정이 심각한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온전히 개인일 수 있는 자유, 모두가 모두에게 서로 무해하다는 믿음과 확신. 그 또한 완벽한 휴식의 조건이었다.

여행이 곧 관광이라는 건 이미 오래된 개념, 안 해도 되는 숙제 같았다. 언제부턴가의 여행은 오로지 시간이었다. 어떤 도시에서 무엇을 보고 먹고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에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다. 내가 내 의식의 흐름대로 결정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여행의 전부였다. 그러니 이크종처럼 한 번 갔던 도시를 여러 번 찾는 건 아주 지혜로운 판단이었다. 오래된 친구를 찾는 마음으로 가뿐하게 떠날 수 있는 도시의 존재야말로 아주 조용하고 내면적인 사치 아닐까? 나에겐 발리가 그런 도시가 되었다. 올해의 온기가 내년이라고 사라질 리 없고, 그때 창 밖에서 산들거리던 나무들의 리듬은 앞으로의 모든 시간과 평화에 대한 약속 같아서. 그 풍경을 보다가 수련하러 나가는 마음처럼 풍요로운 시간을 나는 알지 못하니까.

다시 돌아온 서울의 시간은 혹한처럼 가차 없었다. 2018년 마지막 주말까지 누가 상투를 잡고 흔드는 것 같은 시간을 살았다. 그게 고생이라고 징징거릴 마음은 없다 해도, 가끔은 천천히 평원을 걷고 싶을 때가 없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매일매일 협곡 사이를 전력질주하는 기분으로 살았던 한 해였다.

그래서, 우리의 짧았던 겨울 여행은 스스로 선택한 평원이었다. 추우면 추운대로 따뜻하면 매캐해서 혹독한 서울의 겨울과 잠시만 나누는 이별이었다. 그 애증의 시간 대신 따뜻한 공기와 춤추는 숲 속에 기꺼이 파묻히는 일. 친하고 사랑하는 도시의 속내를 조금 더 알기 위해 익숙한 길과 낯선 골목을 적당히 섞어가며 산책하는 시간. 우리는 그렇게 머물다 왔다. 좋았던 여행 하나로 며칠을 버티는 동안 새해가 되었다. 1월 1일 0시 정각, 창 밖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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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우성
카툰/ 이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