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s

연말의 108배

2018년 마지막 금요일 저녁, 요가원에서 보냈던 벅찬 시간의 기록.

더파크 2019년 02월 06일

무슨 일이 있어도 7시까지는 반드시 요가원에 가야 했다. 2018년 마지막 금요일 저녁, 108배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 태양 경배 자세, 수리야나마스카라 A(Suryanamaskara)를 108번 반복하는 날이었다. 우리 요가원이 매년 마지막 주 금요일을 보내는 방식. 하지만 지금까지는 어쩐지 참여할 생각을 못했던 수업이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더 깊이 수련하는 분들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공고가 붙었을 때부터 일치감치 예약을 해두고 기다렸다.

유난한 한 해였다. 발목을 크게 다쳐 칩거했던 2월과 3월, 내 회사를 차려서 쉬지 않고 달렸던 사계절이었다. 마무리는 경건하고 차분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자동차 열쇠를 들고나갔을 때가 6시 반이었다. 30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분도 늦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말의 금요일 밤, 한남대교를 건너는 데만 20분이 걸렸다. 요가원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6시 59분이었다. 서둘러 요가복으로 갈아입었다. 수건은 입에 물었다. 늦을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가라앉힐 틈도 없었다. 매트를 옆구리에 끼고 가쁜 호흡으로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딱 내 매트를 깔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두 번째 열에 비어있었다. 매트를 깔고 앉자마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마음이 이젠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먼저 종이와 볼펜을 나눠주셨다. 약 30분 동안, 2019년의 나에게 스스로 바라는 점에 대해 쓰는 시간이었다.

“로또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 이런 걸 쓰는 게 아니에요. 내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내가 세울 수 있는 의도에 대해 써보셨으면 좋겠어요.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게 아니에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매트에 엎드려서 볼펜을 잡았다. 배가 따뜻했다. 볼펜이 종이에 닿을 때마다 좋은 소리가 났다.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숨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30분이 지났을 때,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지금 쓰신 종이는 매트 밑에 넣어두고, 이제 우리 매트 앞에 설까요? 처음 해보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같이 이 시간을 보낼 예정인지를 간단하게 설명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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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경배 자세는 10번의 호흡, 각각 5회의 들숨과 날숨에 따라 7개의 자세가 물처럼 흐르는 동작이다. 빈야사 요가 수련에서 본격적인 흐름을 타기 전에 몸을 풀어주는 자세이기도 하다. 기본 중의 기본,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반복했던 자세였다. 108이라는 숫자의 거대함을 가늠할 길이 없었지만, 108번을 반복한다 해도 딱히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궁금했다. 그 거대함을 체험하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 스튜디오에는 약 50여 명이 함께였다.

시작할 땐 전신이 뻑뻑했다. 추위와 피로, 하루 종일 웅크렸던 몸이었다. 아래 허리와 햄스트링, 종아리부터 발 뒤꿈치까지 이어지는 모든 근육이 처음으로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뻐근하기도 시원하기도 한 감각. 하지만 이대로 다섯 번 정도 반복하면 곧 편해질 것도 알고 있었다. 태양 경배는 그런 동작이었다. 3~5회만 반복하면 전신이 부드러워졌다. 잠들기 전에 몇 번만 해도 수면의 질이 달라졌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뻣뻣했던 몸이 곧 부드러워졌다. 늘어졌던 근육에는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속도는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숫자는 처음부터 헤아리지 않았다. 스무 번인지 서른 번인지는커녕, 열 번을 넘어가는 시점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숫자를 세느니 숨을 쉬자는 생각이었다. 느끼고 싶었던 건 오로지 흐름이었다. 내 몸이 만들어내는 작고 사소한 흐름, 그날 스튜디오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같은 동작을 정성껏 하면서 만들어내는 거대한 흐름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엔 이런 생각까지 다 사라졌다. 의식과 몸이 점으로 수렴하는 것 같았다.

스무 번쯤 했을까? 몸은 가벼워졌다.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몇 번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수련처럼 어려운 자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래 버텨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반복. 온몸에 에너지가 차오르고 있었다. 30-40번쯤 했다는 느낌이 들 때는 스스로 좀 잘한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멍해지는 기분. 이대로 108번을 한다 해도 무섭지 않았다. 혼자서 우쭐했던 것이다. 이게 얼마나 바보 같은 자만이었는지.

열 번쯤 더 했을 때, 몸은 천천히 분명하게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시야가 좁아졌다. 땀방울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조금씩 알아채기 시작했다. 한 번의 태양 경배는 그대로 각자의 시간 같았다. 그 안에 1년이 다 담겨있었다. 열 번의 태양 경배에 10년이 흐른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을 종횡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런 채 늙어가는 것 같았다. 스무 번쯤 했을 때의 상태가 자만이었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도 이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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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스무 살 즈음이었을까? 젊은 줄도 모르고 젊었던 시절. 몸에 가득 찬 그 힘을 느꼈다가, 서른이었다가, 다 이룰 수 있을 것처럼 우쭐했다가, 50~60번의 태양 경배 즈음에 노년에 접어들어 천천히 무거워지는 사지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팔, 다리, 엉덩이, 허리, 어깨가 한꺼번에 묵직해졌다. 태연하게 몸을 움직이려고 조금 더 힘을 쓸 때 나는 더 늙어가는 것 같았다. 근육이 아파서 힘이 들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중력이 강해진 느낌. 모든 근육의 질량이 늘어난 것 같았다. 크고 작은 무게추가 달려 있어서 ‘끄응차’ 하고 소리를 내야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조금씩 무거워지다, 천천히 느려지다 결국은 멈추는 일. 늙다, 감당하다,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는 시간.

그렇게 몇 번이나 더 했을까? 한 번이 1년이라면 나는 지금 몇 살일까?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시작했으니 끊을 수는 없는 흐름이었다. 시간과 노화를 막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108번을 다 마치는 순간의 나는 혹시 죽음을 엿볼 수 있을까?

이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빛처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젊었던 엄마가 소녀처럼 웃고 있었다. 아빠한테는 여전한 활기와 에너지가 있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이렇게 같이,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었다. 슬펐지만 피할 수 없어서 명료했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는데 머리가 공기처럼 가벼워졌다. 그때, 내 마음을 다 보고 있었던 것 같은 선생님 말씀.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거예요. 삶이 또한 그렇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반복하는 태양 경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이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 무수한 반복에는 어떤 신성이 있는 것 같았다.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채 다만 108회를 채울 때까지 반복하는 우직한 순수가 있었다.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같은 동작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하면서 깨달았다. 모든 동작의 디테일과 마음가짐이 매번 달랐다. 호흡의 깊이와 길이도 달랐다. 하나의 태양 경배가 시작할 땐 매일 맞이하는 아침 같았고, 한 번의 흐름이 끝날 땐 그제야 잠드는 밤 같았다. 일상처럼 반복하는 흐름. 늘 같지만 절대 같을 수 없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머리에서 흐른 땀이 눈 속으로 들어가서 자꾸만 따가웠는데 훔칠 틈이 없었다. 옷이 헝클어지고 안경이 흘러내렸다. 몸이 땀으로 덮여갈 때, 마음에 끼어있던 모든 먼지와 안개가 말끔히 물러나고 있었다. 몸과 매트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하얗게 비어 가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단 한 번도 횟수를 알려주지 않았다. 108번의 태양 경배 중 몇 번이나 해냈는지, 몇 번이나 남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선생님뿐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면서 호흡과 움직임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따가운 눈과 헝클어진 옷, 흘러내리는 안경을 그대로 두었다. 다만 반복했다. 하루, 1년, 평생 같은 흐름이었다.

“아주 잘하고 있어요. 거의 다 왔어요. 모두 정말 잘하고 있어요. 멋져요.”

하긴, 어디까지 왔는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끝은 정해져 있었다. 멈출 수 없고, 헤아린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이젠 엉덩이가 뚝 떨어질 것 같았다. 허리도 뻐근하게 아파왔다. 어깨와 팔은 물속에 잠긴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은 후에 다시 일어날 일이 없듯이, 끝을 만나면 분명히 쉴 수 있었다.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 명백함 뿐이었다. 그런 마음이 평화에 닿아 있었다. 105번째 경배를 마칠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또렷하고 평화로운 미궁 속에 있었다. 거의 무아지경이었던 순간, 다시 선생님 목소리.

“자, 이제… 다 같이 두 손 가슴 앞에서 합장하고 기다려주세요. 우리 이제 마지막 세 번의 경배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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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탄식, 작은 환호와 뿌듯한 기쁨…. 슬프지는 않았는데, 작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가 발바닥부터 하체를 거쳐 가슴으로 치고 올라오는 과정을 똑똑히 느꼈다. 이대로 머리까지 올라오면 눈물이 흐르겠지? 엄청난 기세로 올라오는 그 에너지를 꾹 담아 눌러두었다. 울면서 흐트러진 호흡으로는 남아있는 세 번의 태양 경배를 제대로 마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 세 번은 조금 더 차분하고 싶었다. 내 삶도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열 번의 호흡, 한 번의 흐름, 세 번의 반복, 108번째 마무리. 마지막 태양 경배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대신 거기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웃는 얼굴과 박수 소리가 잔잔하게 공간을 채우던 그 느낌만은 깨끗하게 남아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이제 인 요가로 몸을 좀 풀어줄 거예요. 지금 양의 에너지가 굉장히 고조된 상태고, 아마 내일 조금이라도 걷기를 원하신다면, 지금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게 좋아요.”

열기와 호흡으로 한껏 달아오른 공간에 순간 웃음이 섞였다. 우리가 다 같이 해냈다는 마음, 금요일 밤의 단정한 성취였다. 이제 몸을 풀어줄 차례였다. 어깨와 가슴, 허벅지와 허리를 달래는 동안 우리는 다시 고요해졌다. 모두의 에너지가 일제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닥부터 치고 올라왔던 감정도 어느새 곱게 흩어져 있었다. 마지막 자세는 사바사나(송장 자세)였다. 삶을 마친 사람만이 접할 수 있는 안식의 세계로, 우리는 다 같이 진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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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났을 때, 일어나 앉아서 눈을 감고 두 손바닥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기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행복하기를, 기꺼이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찾기를. 눈을 뜨고 박수를 쳤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4년 동안 다양한 수업에서 만났던 얼굴, 먼저 인사를 건네던 다정함, 얼굴은 알지만 인사는 나누지 못했던 수줍음들. 하지만 같은 시간을 같이 이겨냈다는 사뿐한 공감대 속에서, 우리는 다 같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

“우성 선생님, 같이 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선생님의 왼쪽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안겨서, 나는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아까 다 흩어졌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다시 올라오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진짜 감사해요. 너무 좋았어요.”

“내가 더 고맙지. 우리 내년에도 즐겁게 수련하자. 알았지?”

한해를 요가로 마무리했던 날, 스튜디오에는 우리가 고조시킨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체온으로 다시 따뜻해지고 있었다.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나의 호흡이었다. 마음껏 마시는 들숨이었고, 끝까지 내쉬는 날숨이었다. 마시고 내쉬는 숨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 인생이었다. 소중한 건 모든 순간, 그 총합으로서의 일상이었다. 지금은 선생님의 그 한 마디만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내년에도, 즐겁게, 수련하는 것. 그 한 마디 안에 소박하고 좋은 하루가 다 담겨 있었다. 어쩐지 목이 매여서,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