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s

[CAR] 50년의 철학, 재규어의 미래

재규어 리드 익스테리어 디자이너 박지영을 만났다. “출시 50주년을 맞은 XJ, 고유의 헤리티지를 이어간 100주년 기념 XJ를 디자인하라”는 주제로 열린 2018 재규어 카디자인 어워드 사전 설명회에서였다.

우성 2018년 07월 12일

몇 년 전, 우리는 한적한 런던 교외에 있었다. 막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온 오후였다. 동네에 사는 것 같은 노부부 몇몇과 휴가중인 듯한 커플들이 야외 테이블에 나른하게 앉아있었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 티스푼과 컵이 닿는 소리와 새소리까지 세세하게 들리는 고요였다.

“크릉!”

딱 한 번, 고양이과 맹수가 위협할 때 내는 낮고 위압적인 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젊은 커플들의 시선은 놀라움에서 곧 선망으로 바뀌었다. 노부부의 눈은 이해하고 있었다. ‘재규어라면 그럴 수 있지’ 하는 표정이었다. ‘스르륵’, 감색 재규어 XJ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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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J의 존재를 파악한 사람들은 쉬이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움직이기 시작한 XJ가 그대로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그대로 감상하듯 했다. 한낮을 관통하는 햇빛이 XJ의 차체를 유려하게 훑고 있었다. 빛을 반사해내는 XJ의 모든 세부가 의연하고 도도했다. 안보이던 면이 돋보이고 감춰져 있었던 것 같은 선이 도드라지는 순간의 자태를 보면서 사람들은 상상했을 것이다. 아까 그런 소리를 냈던 자동차라면, 마음 단단히 먹고 달릴 때의 기세는 또 얼마나 공격적일까?

“그 심플한 순수, 최적의 볼륨과 빛의 반사. 어떻게 해야 빛이 예쁘게 비치는지에 대해 저희가 추구하는 섬세한 순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순수하니까 재규어의 비율이 더 잘 드러나는 거예요. 다른 것들이 눈을 자극하지 않으니까 정말 보여주고 싶은 비율과 강조하고 싶은 면이 감성적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거죠.”

마주 앉은 재규어 리드 익스테리어 디자이너 박지영이 말했다. 2018 재규어 카디자인 어워드 사전 설명회 직후, 재규어 랜드로버 신사 가로수길 드라이빙 센터에서였다. 1층 로비에는 재규어 I-페이스가 서있었다. 그 차를 구경하면서 놀라고, 즐거워하고, 결국 갖고 싶어하는 누군가의 흥분이 그대로 2층까지 느껴졌다. 박지영 디자이너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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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가 선을 자극적으로 긋거나 면 처리에 과한 굴곡이 있는 게 아닌데도 마음을 더 자극하는게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완벽을 추구하는 비례, 순수의 미학을 극대화하는 것 같아요. 재규어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감성적 아우라를 자극하는 내공이 쌓여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 힘이 모든 재규어에 담겨있고, XJ는 재규어의 기함으로서 그 감성을 가득 담고 있는 거죠.”

어떤 차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복잡한 선을 쓴다. 선이 복잡해지면 면도 그렇게 된다. 그렇게 심난한 면 위에선 빛이 흐를 수 없다. 깨지거나 방황한다. 그런 차를 보면서 품격, 권위, 아름다움 같은 단어를 떠올릴 수 있나? 아무리 빨리 달리는 차라도, 트랙을 달려보면 다를 거라고 큰소리 쳐도 갖고 싶은 마음은 안 생기는데? 자극과 호기심은 그런 식으로도 스쳐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선망하는 디자인, 물성 자체를 목표 삼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게 아니다.

재규어의 기함, XJ의 디자인 언어는 시작부터 궤가 달랐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하는 말 사이의 놀라운 절제, 느껴지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에서 본능적으로 잡은 균형이 아찔했다. 모든 굴곡과 디테일에는 금방이라도 송곳니를 드러낼 것 같은 긴장과 힘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담백하고 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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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팽팽한 역설이 거대한 차체를 감싸고 있었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가치들이 마냥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으니까, 그런 차는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응시하게 된다. 그날 런던 교외의 작은 식당에서나 서울에서도 재규어 XJ의 존재감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홀린 것처럼 XJ에 꽂혀서 쉽게 거둬지지 않았다.

시작은 1968년, 시리즈 1의 등장이었다. 이후 4년간 세계 유일의 대량생산 12기통 4도어 승용차였다. 최고속도는 그때도 시속 225킬로미터였다. 가장 빠른 4인승이었다. 이후 여덟 세대, 그때의 가치와 전통 그대로 올해로 50주년이 됐다.

“오로지 볼륨으로만 표현하는 차도 있어요. 하지만 XJ의 기본은 정말 역동적으로 잘 달리면서도 재규어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이니까, 그 탄탄하고 섬세한 근육을 순수하게 표현하려고 해요. 울그락 불그락 하는 그런 근육이 아니예요. 우리가 느끼는 근육의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요.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달렸을 때 빛이 반사되고 부서지는 형태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이고 할까요? 이안 칼럼(재규어 디자인 디렉터)이 항상 강조하는 게 있어요. 타고 싶고 들어가고 싶게, 들어갔다면 머무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지금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재규어 XJ의 시작은 2009년이었다. 이전까지의 모든 XJ와는 아주 다른 언어였다. 재규어 XJ의 눈동자에 박혀있던 네 개의 동그라미, 그로부터 이어지는 보닛의 굴곡과 선을 전통이자 상징으로 여겼던 누군가에겐 큰 아쉬움일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40년을 이어온 디자인 언어의 힘, 재규어가 쌓아온 역사이자 고집이었다.

그걸 통째로 바꾼 인물이 재규어 디자인 디렉터 이안 칼럼이었다. 네 개의 동그란 헤드램프가 사라진 얼굴엔 가로로 길고 날렵한 헤드램프가 생겼다. 라디에이터 그릴도 듬직한 양감으로 한 덩어리가 됐다. 세세하게 뜯어봐도 같은 구석이 없다. 꼼꼼하고 완벽한 혁신, 재규어 디자인의 혁명적인 변화였다. 다시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동그란 눈동자 네 개를 지키면서 ‘헤리티지를 지켰다’고 말하는 건 안이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던 거죠. 재규어가 정말 지켜야 하는 가치는 램프 네 개가 아니예요.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곧 달려나갈 것 같은 재규어만의 그 느낌, 그 개념 자체였다는 걸 일을 하면서 더 깨달았어요. 그 자체를 새롭게 표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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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2014년부터 재규어에서 일해온 박지영 디자이너의 말. 정작 중요한 건 램프의 형태가 아니었다. 그 모든 세부를 포괄하는 재규어의 가치와 철학이었다. 디자인이란 그렇게 거대한 영감으로부터 시작하는 거였다. 다소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과 느낌, 디자이너 개인의 영감으로부터 전통과의 연결고리를 찾아 구체화 하는 일이었다. 2016년, 뉴 XJ 신차 발표회 현장에서의 이언 칼럼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오늘 출시한 XJ는 1968년에 나온 최초의 XJ를 보고 영감을 받았습니다. 당시 특별하고 강렬했던 1세대 XJ의 가치를 살려서 디자인했죠. 디자인할 때는 전통을 단순히 따라하는 게 아니라 그 가치를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형 XJ에서도 4개의 포인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누구나 예쁜 자동차 한 대쯤은 마음 속에 간직해 두고 사는 게 아닐까? 어떤 시기의 어떤 재규어는 그대로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었다. 재규어 XJ에 대한 사랑은 유난했다. 국적과 계층을 넘나드는 취향이었다. 그 독특하고 유일한 지위를 반 세기동안 유지해왔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나 <롱 굿 프라이데이>, 그 숱한 007 시리즈에선 단단한 문화적 상징이자 아이콘이었다. 이미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마음, 가히 ‘마니아적’ 고집이기도 했다. 이안 칼럼은 4개의 헤드램프에 대한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았을까?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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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1961년에 재규어 풀사이즈 세단 마크 10이 출시됐을 때 4개의 헤드램프가 처음 들어갔다. 그때 한 아버지 친구분 께서는 ‘이거 재규어 아니야!’라고 말했다. 1968년 최초의 XJ를 출시할 땐 ‘마크 10이랑 너무 다른데?’라고 말했다. 디자인은 새로운 시대에 부흥하면서 바뀌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시대와 만나 새로운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재규어는 시대와 디자인, 역사와 혁명의 끝없는 순환구조 위에서 늘 첨단이었으니까… 이안 칼럼의 혁신적인 디자인 언어가 새로운 시대를 열고, 그 새로움을 시작으로 다시 역사가 시작하는 되는 흐름이야말로 자연스러웠다. 지금도 재규어는 수십 년 후를 내다보는 디자인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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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디자이너는 재규어에 입사했던 4년 전부터 미래를 스케치하고 있었다. 입사 당시에는 재규어 어드밴스드 디자인 스튜디오의 익스테리어 디자이너였다. 아시아 여성 최초였다. 재규어 컨셉트카와 미래 디자인 컨셉 개발을 총괄하는 부서였다. 이후 3년만에 승진했다. 지금의 직책은 리드 익스테리어 디자이너. 그 기민한 손 끝에서, 재규어의 또 다른 혁신이 태어나는 중이라는 뜻이다.

“저희는 향후 20년까지의 계획을 설정하고 어떤 시기에 어떤 새로운 모델을 투입할 것인지 스케치하고 디자인해요. 디자인은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하니까. ‘이런 디자인이 이런 시기에 필요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죠. 모든 디자이너는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스케치를 하고 아이디어를 주는 역할을 해요. 리드 디자이너가 되면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하죠. 전에는 내 아이디어에 초점을 두고 스케치 했다면, 지금은 프로젝트 단위의 책임감을 더 갖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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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랜드로버 드라이빙 센터 1층 로비에는 재규어 I-페이스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오후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I-페이스는 재규어가 올 가을 출시 예정인 전기차다. 재규어 본연의 아름다움과 무시무시한 성능, SUV의 기능에 스포츠카의 성능까지 고루 갖춘 모델이다. 혁신을 멈추지 않는 재규어의 현재이자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온 미래이기도 하다. 물방울이 맺혀 흐르는 컵을 내려 놓으면서 박지영 디자이너가 말을 이었다.

“재규어 디자이너들은 모두 브랜드 자체에 대한 애정이 있어요.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재규어를 디자인하고 싶다’는 말을 하죠. 저도 정말 아름다운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싶어요. 아름다운 오브제를 남길 수 있다는 것. 전시장이든 박물관에 남아있든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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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의 자동차에는 지금 세상에 공개돼 있는 거의 모든 기술과 산업이 집약돼 있다. 디자이너는 그 모든 배경을 바탕으로 결국 아름다움을 쟁취해내야 하는 협상가이자 철학자, 사업가이자 예술가일 것이다. I-페이스가 전시돼 있는 가로수길에 재규어 드라이빙 센터 로비 안쪽에는 재규어 XJ 또한 고고하게 서있었다. 재규어의 현재와 미래, 전통과 혁신, 그들이 고수해온 정신과 품위가 그대로 깃들어 있는 공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터지는 감탄사, “너무 예쁘다”는 말, 스태프에게 하는 질문이 끊이지 않던 오후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사람들이 재규어를 보면서 하는 말과 소리에 공간 전체를 채우는 활력이 있었다. 로비에서 재규어를 둘러보던 누군가의 큰 웃음소리가 2층 카페까지 꽉 채울 때, 가파르게 기울기 시작한 오후의 햇빛이 I-페이스 위에 머물러 있었다.

글/ 정우성
그림/ 이크종
사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